덕암서원 성주 월항면 문화,유적
늦은 봄날의 햇살이 부드럽게 산을 비추던 날, 성주 월항면의 덕암서원을 찾았습니다. 길가에는 벚꽃잎이 막 떨어져 바닥이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산새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흔들었습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에 자리한 서원은 높은 담장도, 화려한 문도 없이 자연 속에 스며들 듯 서 있었습니다. 입구를 지나자 바람이 느티나무 가지를 스치며 잔잔히 울렸고, 햇빛이 기와 위에 부서져 반짝였습니다. 서원의 첫인상은 ‘절제된 품격’이었습니다. 크지 않지만 건물의 균형이 잡혀 있고,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습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닥의 자갈이 사각거렸고, 그 소리마저 공간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도시의 번잡함과는 전혀 다른, 마음이 비워지는 조용한 아침이었습니다.
1. 산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길
덕암서원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덕암서원’을 입력하면 마을을 지나 산자락 쪽으로 좁은 도로가 이어지며, 입구 아래쪽에 작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차량을 세우고 5분 정도 걸으면 서원의 홍살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르는 길은 완만한 흙길로, 양옆에는 대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습니다. 봄철에는 새소리가 가깝게 들리고, 여름에는 나무 그늘 덕분에 햇살이 부드럽게 걸러집니다. 길 중간에는 ‘덕암서원(德巖書院)’이라 새겨진 돌비가 세워져 있어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입구에서 바라보면 서원이 산의 품속에 안겨 있는 듯한 형태로 자리해 있습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점점 공기가 맑아지고, 주변의 소리가 잦아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정적이 이미 서원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2. 단아하게 펼쳐진 서원의 공간
홍살문을 지나면 넓지 않은 마당이 나오고, 정면으로 강당이 자리합니다. 양옆으로는 동재와 서재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구조가 매우 정돈되어 있습니다. 마루에 앉으면 산바람이 그대로 스며들어 나무기둥 사이를 맴돕니다. 강당의 처마선은 부드럽게 휘어 있고, 기둥의 나뭇결은 오랜 세월의 색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그 아래에는 작은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가 서로 스치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습니다. 서원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안의 질서와 조화가 주는 안정감은 오히려 웅장함보다 깊게 느껴졌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서원의 구조를 따라 움직이며, 시간의 흐름이 한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3. 덕암서원의 역사와 정신
덕암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 일선 김우옹(一善 金友雍) 선생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입니다. 김우옹 선생은 성리학의 대가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지역 유생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서원은 선조 31년(1598)에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도 학문과 제향의 중심지로 기능했습니다. 훗날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1970년대에 유림의 손으로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대성전에는 김우옹 선생과 제자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봄·가을로 제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건물 구조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로,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서원의 이름인 ‘덕암’은 ‘덕이 바위처럼 단단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김우옹 선생의 학문적 신념과 인품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4. 세심한 관리와 자연의 조화
덕암서원은 비교적 한적한 위치에 있음에도 관리가 매우 잘 되어 있었습니다. 마당의 잔디는 고르게 다듬어져 있고, 돌계단은 깨끗이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안내문은 목재로 제작되어 주변 경관과 어우러졌으며, 인공적인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강당 옆에는 작은 샘이 흐르고 있어, 물소리가 은은하게 들렸습니다. 여름에는 이 물소리가 서원 전체에 시원함을 더하고, 겨울에는 고요함이 한층 짙어집니다. 담장 너머로는 들판과 마을이 내려다보여, 학문 공간임에도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원의 경계 안에서는 새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아, 머무는 동안 마음이 자연스럽게 고요해졌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의 손길이 과하지 않은, 진정한 ‘쉼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주변에서 함께 둘러볼 만한 곳
덕암서원을 방문한 뒤에는 차로 15분 거리의 ‘성주향교’를 함께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조선시대 유교 교육의 중심이었던 향교로, 덕암서원과 함께 성주의 유학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인근 ‘한개마을’은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된 마을로, 조선 후기 선비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월항면 중심가의 ‘성주국밥거리’에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여정을 마무리하면 좋습니다. 오후에는 ‘성주호전망대’로 이동해 호수를 내려다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추천할 만합니다. 덕암서원의 고요한 정취에서 시작해 전통마을과 자연 경관으로 이어지는 일정은 하루 안에 성주의 역사와 풍경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코스였습니다.
6. 방문 시 유의할 점과 팁
덕암서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주차장은 넓지 않으므로 주말에는 마을 입구에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고, 겨울에는 산바람이 강하므로 계절에 맞는 복장을 준비해야 합니다. 서원은 제향 공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내부 전각 출입은 삼가야 하며, 외부에서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플래시 사용은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봄철에는 햇살이 강당의 마루를 비출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 시간대에는 나무기둥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서원의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방문 시에는 주변의 자연을 해치지 않도록 조용히 머무르는 것이 이곳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이었습니다.
마무리
덕암서원은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화려함보다 절제된 품격이 돋보였고, 나무와 돌, 그리고 바람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완벽했습니다. 강당에 앉아 바라본 산과 하늘의 경계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고, 그 속에서 오랜 학문의 향기가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조용한 배움의 자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성주를 찾게 된다면 계절이 바뀐 뒤, 다른 빛과 바람 속의 덕암서원을 보고 싶습니다. 그때에도 바람은 고요하게 불고, 나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겠지요. 덕암서원은 성주의 산세처럼 단단하고, 그 고요함 속에서 오랜 정신을 품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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